내가 왜 블로그를 시작했나?
나는 약 3년 전인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블로깅을 하겠다 다짐했었다. 그런데 왜 내가 지금까지 블로그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기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블로그 소프트웨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에 네이버 블로그를 사용해봤으나, 너무 가벼운 문화였다. 네이버 블로그는 전적으로 내가 스크랩을 빙자한 펌질과 신변잡기에 몰두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싸이월드를 만든 사람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남몰래 설치해서 사용해본 블로그 소프트웨어가 꽤 되는 듯하다. WordPress는 처음 설치하고 풍부한 기능에 만족할 수 있었으나, 내가 테마를 작성하려고 하자 금새 암담해졌다. 제공되는 API가 유연성이 부족해서, 내가 실제 구현을 보고 내부 동작을 똑같이 코딩해야 했다. 테마를 반쯤 만들었으나, 내가 테마를 만드는 것인지, 새로 블로그 스트웨어 하나를 만드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어 그만 두었다. soojung은 친구가 사용하다가 데이터가 꼬이고 엄청난 트랙백 스팸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포기했다. 그리고 아직은 기능이 부족했다. Blogger는 트랙백이 지원하지 않는 듯하고, 테마 수정하기가 불편해서 블로그 하나 생성해놓고 냅뒀다.
고등학교 2학년 말에는 절대로 내 마음에 드는 블로그 스프트웨어는 없을 것이라는 성급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 이후로 약 1년 반 정도를 포스팅 욕구를 억제하며 지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포스팅은 정적인 HTML 문서를 만들었지만, 역시 분류가 안되고 검색하기도 힘들었다(그때 썼던 문서들 중 반 정도는 잃어버렸고, 남은 것은 따로 모아두었다. 지금은 모두 날렸다). MediaWiki를 설치해서 그걸로 쓰고 싶은 글을 모아두기도 했으나, 지금은 데이터를 날렸다.
최근 고등학교 졸업을 눈앞에 두고, 다시 블로그에 대한 의지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WordPress에 도전했다. 두번째 버전이 릴리즈되어, 좀더 기능이 강력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원하는 테마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블로그 소프트웨어를 반쯤—좀 과장해서—다시 구현해야 했다.
나는 허탈한 기분으로 친구 강성룡, 후배 이흥섭과 함께 새로운 블로그 소프트웨어를 작성하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러던 가운데 RoR 기반으로 작성된 typo를 발견했다. 별 기대 없이 시험삼아 설치해 보았는데, 의도 자체도 이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벤치마크하자는 의미에서였다. 첫 인상은 ‘WordPress랑 비슷하다’였다. 혹시나 해서 기본 테마 소스 코드를 들쳐보았는데, 생각보다 깔끔했다. 장난처럼 테마를 작성하다보니 어느새 이 블로그가 완성되었다. (테마를 작성하며 말로만 듣던 RoR의 놀라운 생산성을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난 O/RM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실제로 만져보니 쓸만하고 편했다.)
내가 이렇게 블로그에 목을 매는 이유가 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사실 나는 중학교 때 글을 쓰겠다고 나댔던 사람이다. 그것도 문학을 해보겠다고, 이것저것 소설류의 글을 써봤는데…… 결국 도달한 결론은, 내가 주로 다루고 싶어하는 주제의 글은 문학적 메타포가 적당하지 않거나, 문학적 형식을 사용하는 것은 낭비라는 것이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좀더 고민하고 궁리하면 한 문장으로도 얼마든지 명쾌하게 표현 가능한데, 그것을 위해서 등장 인물을 만들고 이야기를 짜내는 것이 우습기도 했다. 결국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좋았던게 아닌가 싶다. 그런 고민을 하던 때에 발견한 것이 웹로그(weblog), 즉 블로그였다.
나는 거의 컴퓨터로 모든 글을 작성한다. 지구력이 없어서 장문은 꿈을 꾸지도 못한다(마음먹고 쓰면 얼마 가지 못해서 흐지부지된다). 대신 단상을 그대로 글로 옮기곤 하는 스타일이다. 단상은 주로 끊기지 않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화두로 내 머릿속에서 죽지 않는다. 주제는 컴퓨터 공학적인 것부터 텍스트, 인지 공학, 역사, 설계, 사회학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나에게는 블로그가 가장 적당한 선택이였다. 혹자는 블로그를 저널리즘으로 보기도 하지만, 나는 블로그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텍스트 장르 취급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비교한다면 수필, 저널리즘, 일기 등과 할 수 있겠지만, 역시 많이 다르다. 가장 다른 점은 확실한 피드백이다. 피드백은 단순히 블로거의 사회적 허영 같은 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그것을 충족시켜주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피드백은 글의 주제와 그 통찰에 제곱을 해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통찰은 부딛히고 겹칠 때마다 엄청나게 불어나고 깊어지는 특성이 있다. 많은 통찰은 종종 글을 쓰고, 남과 대화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정리되고 진화한다.
나는 아마 블로그를 신변잡기를 쓰는 일기장으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블로그가 그런 종류이기 때문이다. 링크와 인용을 하더라도 내 생각이 없다면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블로그의 목적을 통찰의 심화로 보고 있는 만큼, 나에게도 그리고 남에게도 유익한 블로그로 키워나갈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RSS 리더에서 제거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덧. 이 블로그의 테마는 내가 직접 작성했다. 이 typo용 테마를 원하는 사람은 내게 개인적으로 연락하면 보내줄 수 있다.

December 3rd, 2006 at 9:31 PM
선배도 드디어 블로그 시작하시는군요. 가끔 바뀌는 대문글을 이젠 블로그에서 볼 수 있겠네요.
phapyrus는 꼭 우리 입맛에 꼭 맞는 최고의 툴로 만듭시다!
December 3rd, 2006 at 10:53 PM
Phapyrus 하기 전에, PHP 인터프리터부터 작성해야해. O/RM이 아무리 좋아도 인터프리터 없으면 여전히 불편한 것 같아.
December 4th, 2006 at 12:22 AM
넵! PHP 인터프리터 기대중이에요.
December 4th, 2006 at 12:34 AM
우리 근데 Mach Framework도 어서 진행해야 하는데…….
May 5th, 2007 at 1:27 AM
글솜씨가 대단하시군요. 민희씨 ^^;
잘읽고 갑니다.
부디 완쾌하소서…
May 5th, 2007 at 9:43 AM
앗 준호씨 안녕하세요~
다음주 중으로 다시 출근할께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