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에 등장한 니체
기흉에 걸려 약 2주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기흉은 흔히 농담삼아 말하는 “허파에 바람 들어간” 상태를 말합니다. 허파 꽈리들 가운데 한두 개 정도가 기형적으로 합쳐져서 큰 허파 꽈리가 존재할 수도 있는데, 그런 허파 꽈리는 표면적이 넓어서 큰 충격을 받을 경우 터질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허파에 구멍이 생기고 허파와 허파 외벽 사이에 공기가 차는 병입니다.
저는 자연 기흉이라고 해서, 선천적으로 그런 모양의 허파 꽈리를 가지고 있던 듯합니다. 기침을 하다가 터졌는데, 그런 모양의 꽈리가 꽤 있을테니 앞으로도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입니다. 재발률이 50%라고 합니다. 술, 담배는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담배는 허파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으니 당연한 것이고, 술은 혈압이 올라 압력을 받아 꽈리가 터질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기침 살짝 했다가 발현했으니, 음주로 재발할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하겠죠. 격한 운동도 역시 못한다고 합니다.
첫날 옆구리를 통해 폐를 관통하는 튜브를 박았는데, 정말 아팠습니다. 예전부터 무협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칼이 꽂혀서 심장이나 폐와 같은 내장을 관통하면 대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었는데, 궁금해할만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저는 폐에는 신경이 없어서 고통이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느껴봤던 감각적인 고통들 중에서는 제일 아팠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존심으로 버티며 소리 지르거나 울지는 않았습니다. 보통은 튜브를 꽂아서 공기를 밖으로 빼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서 수술을 한 차례 더 했는데, 전신 마취를 해서 고통은 없었습니다. 어제 튜브를 빼고 오늘 퇴원을 했는데, 다행히 튜브를 뺄 때는 아무 느낌이 없더군요.
입원해 있는 동안 너무 심심해서, 강성룡 군에게 영화를 가져다 달라고 해서 데스노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2007년 1월 현재 개봉한 그 데스노트가 아니라, 첫번째 것입니다.

보고 있는데 주인공이 니체의 선악의 피안(Jenseits von Gut und Böse)을 읽는 모습이 나오더군요. 대체 어떤 의도로 그런 연출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의도적이라면 잘못된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악의 피안은 니체 텍스트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인데, 영화에 등장하니 반가운 한편 괜히 제가 모욕적인 느낌도 받았습니다. 니체의 말년 텍스트에서 등장하는 선악이란 시대의 최고 가치를 말하는 것인데, 데스노트에서 나오는 선악의 개념은 그런 수준이 아니지요. 무엇이 선이냐에 대해서 심심할 때마다 끄집어내긴 하지만, 니체를 끌여들일 만큼 고차원적이지도 않고(가치에 대한 재평가와는 거리가 멀죠), 작품 전체적으로 굉장히 유치한 것이 사실이지요. 니체를 얼핏 보여주는 것은 연출 상의 오바인 것 같습니다. 하긴, 일본 문화가 대체로 그런 연출이 많은 것도 같습니다. 데카당은 말할 것도 없죠. 나중에 데카당 독서법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결론: 데스노트에서 니체 텍스트를 카메라에 비춘 것은 너무 오바였다.

January 23rd, 2007 at 10:32 PM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속담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지극히 안쓰러운 장면이군요.
January 24th, 2007 at 11:41 AM
저런 기흉이시라니… 할아버지께서 기흉으로 가셨고, 아버지께서 2번 수술하셨답니다. (집안내력인듯.)
휴우. 어서 쾌차하시길. (재발 조심하세요. 무서워요)
February 2nd, 2007 at 7:44 AM
남코에서 발매한 PS2 소프트 제노사가 에피소드 2의 부제도 ‘선악의 피안’입니다. 에피소드 1의 부제는 ‘힘으로의 의지(=권력 의지)’이고, 에피소드 3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더군요.
사실 그 이전에 니체에 대한 관심은 미미한 편이었고 그가 단순히 허무주의의 대표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게임으로 인해 니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권력 의지에 대해서는 검색이나마 아주 조금은 알게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개란 페이지를 보고 꽤 놀랐습니다. 예전에 데카당에 대한 글만이 메인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을 때 방문했었는데, 그때 생각했던 나이보다 훨씬 젊은 분이더군요. 요즘 젊은이는 역시 대단하달까 그런 일말의 편견(?)을 가지게 할 정도입니다. 가끔 인터넷에서 나이가 어린데도 무서우리만치 날카로운 시각과 자신의 신념을 가진 분들이 보여서 놀라곤 합니다.
아무튼.. 제노사가 게임에서도 그 니체의 사상은 잘 표현된 것 같진 않았습니다. 부제로 사용할 정도면 꽤 스토리에 깊이 관여한다거나, 또는 게임 진행 내내 여기저기서 드러날만하다 싶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군요. 역시 ‘멋이 있으니까’, ‘어딘가 의미심장 하니까’ 라는 의도가 적지 않게 반영된 듯 합니다. 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군요.
그나저나 dahlia라는 필명은 옛날 모 개발자 사이트에서 얼핏 비슷한(또는 동일한) 필명을 본 기억이 나서, 예전에 발겼했을 땐 혹시 동일인물일까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네요.
February 2nd, 2007 at 12:49 PM
아, 예전에 저도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별 상관이 없는 것 같군요.
April 27th, 2007 at 9:29 PM
[…] 전에도 오른쪽에 기흉 걸렸었는데, 이번에는 왼쪽입니다. 지금 공기를 빼내기 위해 왼쪽 가슴에 관을 꽂는 시술을 마치고 입원해 있습니다. 그 사이에 얇은 관이 새로 나와서 이번에는 그걸 넣었는데, 전에는 엄청 아프더니 이번에는 훨씬 덜 아프게 시술을 마쳤습니다. 이제 곧 있으면 다섯 시쯤에 재발을 막기 위해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 들어갑니다. 휴대전화로 글 쓰는 중인데(병원에서 무선 인터넷이 안되네요) 줄바꿈이 불가능해서 한 문단에 몰아씁니다. 당분간 입원으로 블로그 포스팅은 쉬고, 며칠간 취미 프로젝트나 진행해야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