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역사 (擬似歷史)
Wednesday, December 24th, 2008나와 같은 비기독교인—사실은 반기독교에 가까운—에게 성경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성경이 무가치하며, 따라서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반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비판하기 위해 읽긴 해도—사실은 성경을 읽은 후에 반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맞지만—,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취하기 위해서 읽진 않는다. 종교와 상관 없이는, 나는 성경이 나관중(羅貫中) 원작의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이하 삼국연의—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삼국연의 역시 정사 삼국지(三國志) 좀 읽어봤다고 하면 까질 못해 안달인 작품이다. 삼국연의에서 그려지는 대부분의 주요 인물들은 과장되거나 심지어 신격화되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평가절하되었다. 철저히 저자 나관중의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에 의해 쓰여진 이 작품은, 역사의 실제 패자(霸者)인 맹덕(孟德)을 무덕한 역신(逆臣) 정도로 그려내면서도 공명(孔明)에 대해서는 신격화시킨다. 화타(華陀)가 죽은 자를 살려내고 관운장(關雲長)의 어깨뼈를 깎아 해독한다. 관운장은 마취 없이 뼈를 깎는데도 까무러치기는 커녕 태연자약하게 바둑을 둔다. 조자룡(趙子龍)은 유현덕(劉玄德)의 아들 유선(劉禪)을 안고 수십만이나 되는 조조의 군중을 7번을 들락거리면서도 죽기는 커녕 되려 50여명의 적을 벤다. 이와 같은 과장되고 윤색된 부분들이 적지 않은데도 이걸 사실이라고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물론 중국의 후한(後漢) 말 위촉오(魏蜀吳) 삼국시대의 역사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야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삼국연의에 재미 외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물론 재밌기도 엄청 재밌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에서 삼국연의는 인용이 잦은 작품으로, 괜히 고전 명작이라는 말이 붙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많은 인용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 정사 삼국지가 아니라 삼국연의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난 허구나 야사(野史)라도 이렇게 많이 인용된다면 의사 역사라고 본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파우스트(Faust)나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5대 희극과 4대 비극 등은 사실이 아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은 상식의 범주에 속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의사 역사는 역사적 가치는 희박하지만, 이미 상식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가치가 유지된다.
단군 신화는 어떨까? 단군 신화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나온다. 좋다. 나는 교과서에 단군 신화가 포함되어 있는 것에 대해 별 불만이 없다. 내 기억에, 나는 그것을 신화라고 배웠지 역사라고 배우진 않았기 때문이다. 환웅(桓雄)이 신의 서자로 나온다거나 하는 것들은 모두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그러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 자체는 상식적인 부분이고 신화로서 용인된다.
결국 첫머리에 화두로 삼았던 성경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성경, 삼국연의 같은 의사 역사에 관한 글들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들이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한다.1 역사가 아니라고 해서 읽을 가치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오히려 나쁘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그 안에 들어있는 유교관 같은 사상이 나쁘거나 위험해서라고 한다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어떤 사상이나 주제가 위험하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위험하다. 분별있는 사람이라면 허구 세계에서의 가치와 현실에서의 가치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인데, 읽어서 재미나 감동을 느끼는 것이 무어 대수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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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두에서 밝혔다시피 종교 논쟁이 아니다. 성서무오론(biblical infallibility)은 여기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
